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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부처님의 하루 일과

하나의 길 2013. 12. 18. 13:31


1. 오전 일과

부처님은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지 세상을 天眼으로 관찰한다.
만약 종교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으면, 부처님은 도움을 요청받지 않더라도 그에게 다가가 바른 길로 인도한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악한 자를 당신이 직접 찾아가서 교화한다.
예를들면 앙굴리말라(Aṅgulimāla)와 같은 도적을 찾아가 교화한다.

앙굴리말라는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을 모아 목걸이를 할 정도로 난폭한 살인마였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를 찿아가 교화시킨다.
반면에 선한 이들은 부처님을 찾아와 교화받는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사리풋타(Sꐀriputta)와 목갈라나(Moggallꐀna)이다.
 그들은 직접 부처님에게 찾아와 가르침을 받고 상수제자가 된다.
또 하나의 유명한 예는 아나타핀디카(Anathapiṇḍika, 급고독장자)로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환희심으로 부처님을 찾아나선다.
그는 뒷날 사위성에 훌륭한 기원정사를 지워 부처님께 바쳤다.

특별히 재가신자들의 초대를 받지 아니하는 날에는, 부처님은 한 손에 발우를 든채, 홀로 또는 제자들과 함께 이거리 저거리를 거니며

음식을 구한다.
조용히 각 가정의 문 앞에 서서 당신에게 주어진 음식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발우에 모아서 사원으로 돌아온다.

하루에 한번만 음식을 취했기 때문에,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초대를 받지 아니하고 낯선 가정을 방문할 경우 걸식한 음식이 육신의 지탱에 충분할 정도의 영양분을 제공하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고대 인도의 가난한 모습을 상상하면 더더욱 이런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뒷날 주석가에 의하면 부처님이 음식을 드실 때마다 천상의 신들이 내려와서 ojꐀ라는 영양소를 던져 넣었다고 한다.
특히 정각 직전 수자타(Sujāta)가 공양한 음식과 입멸 직전 춘다(Cunda)가 공양한 음식에 신들이 특별한 영양소를 불어 넣었다고 주석하고

있다. 이러한 걸식은 부처님의 나이 80에도 계속되었다. 오전 중에 식사를 마친 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리고나서 당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2. 오후 일과


정오의 점심식사 후 당신이 원하면 우협으로 누워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한다. 한 외도가 부처님에게 성인도 잠을 자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더운 여름 걸식과 공양 후 부처님 당신도 수면을 취한다고 답변한다.
부처님은 수면 그 자체가 성인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답변한다.

혼미한 상태에서 잠을 자는 것은 범부의 수면이지만 부처님과 같은 성인은 마음이 맑은 상태에서 수면을 취한다고 답변한다.
뒷날 일부 논사에 의하면 부처님은 수면을 취하지만 꿈은 꾸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잠에서 일어날 때는 대자비심의 선정(mahākaruṇāsamāpatti)을 성취하고 천안으로 세상을 관찰한다.
특별히 이번에는 홀로 선정 수행을 하고 있는 비구들을 살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살핀다.
만약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행자가 먼 곳에 있으면 부처님은 신통력을 사용하여 그에게 다가가 잘못된 것은 고쳐준다.

그리고나서 다시 당신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저녁이 다가올 즈음에는 재가신자들이 부처님에게 다가와 法을 듣는다. 지혜의 눈으로 그들의 성향이나 자질 등을 살펴서,

그들에게 맞는 법을 한시간 가량 설한다.
청중들은 각자 부처님이 자신에게만 설법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른바 부처님의 對機說法과 一音說法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부처님은 법을 설한다. 부처님은 비근한 비유나 우화로써 가르침을 설한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교화 방식 중 두드러진 것은 문답을 통해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점이다.
부처님은 다양한 문답 형식을 통해 질문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문을 이성적으로 풀 수 있도록하고 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여 제자들을 진리의 문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부처님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거나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근기에 맞추어 문답을 통하여

최상의 진리에 이끄는 진리의 안내자로 그려지고 있다.
보통 재가자에게 부처님은 먼저 보시의 중요성과 천상에 태어나는 길을 가르친다. 청중 들의 근기에 맞추어 법을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次第說法이다. 좀 더 수행이 진전된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쾌락의 위험과 거기서 벗어나는 출가의 즐거움을 설한다.

그리고 좀 더 수행이 진전된 이에게는 四聖諦를 설한다.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캇사파(Kassapa) 3형제 나 앙굴리말라나의 경우처럼, 신통력을 사용하여 교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통변화를 사용하여 대중을 교화하는 것을 부처님은 자제하였다.
부처님이 날란다(Nalanda)에 머물고 있을 때 케밧다(Kevaddha)라는 재가신자가 부처님에게 비구들로 하여금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만약 비구들이 재가신도들 앞에서 기적을 행한다면 날란다 주민들이 훨씬 더 많이 불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부처님은 기적을 행하는 것은 불교 교학의 목적은 아니다라고 단언하면서 그 요청을 거절한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신통력에 현혹되어 진정한 자기 변혁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부처님은 초능력의 행위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율장에서는 비구들이 일반대중 앞에서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으로 금지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이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 상근기의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중근기의 사람에게는 지혜의 향상을 도모하고 하근기의

사람에게는 어둠을 쫓아낸다.
모든 사람들은-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지위가 높든 낮든- 이단의 邪見을 버리고 새로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용한다.

 

3. 初夜

초야는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를 말한다. 이 시간은 오로지 비구들을 위해 부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시간에 비구들은 자유롭게 부처님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의문을 풀거나, 자신에게 적절한 명상의 주제를 얻기도 하고 법을 듣기도 한다.


4. 中夜

중야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를 일컫는다. 이 시간에는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천상의 신들이 부처님에게 다가와 법을 배운다.
천상의 신들이 부처님에게 질문하고 의문을 해소하는 장면이 초기경전에 자주 보인다.

 

5. 後夜

후야는 새벽 2시에서 6시를 말하는데, 이 시기는 다소 4부분으로 세분할 수 있다.

첫째시기(새벽 2시부터 새벽 3시까지)에는 부처님은 경행 등 가벼운 운동을 하여
육체의 건강을 돌본다.

둘째시기(새벽 3시부터 새벽 4시까지)에는 부처님은 우협에 기대어 잠을 잔다.

세째시기(새벽 4시부터 새벽 5시까지)에는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열반의 즐거움을 누린다.

네째시기(새벽 5시부터 새벽 6시까지)에는 대자비심의 선정에 들어가 모든중생들을 향하여
자비의 빛을 발하여 중생의 마음을 유순하게 한다.
세상을 지혜의 눈으로 관찰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찾는다.

 


이상의 하루 일과를 부처님이 지낸 것으로 경전을 편찬한 제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물론 우안거 기간이나 특수한 겨우에는 이러한 일과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전적으로 중생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천상의 신도 포함한 모든 중생을 위하여 하루 하루, 365일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과는 입멸까지 계속 유지되었으리라고 믿어진다.
심지어 입멸의 순간에도 재가신자들에게 법을 설하여 정법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출가수행자를 향하여 당신이 설한 법에 대하여 질문을 하도록 요청하는 장면은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육체적 건강을 위한 시간 이외에는 모든 시간이 중생을 위하여 쓰여 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중생들을 위해 시간을 각각 분배하는 것은 효율적인 시간 관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부처님의 하루 일정을 살펴보면 모든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으로 짜여있음을 살펴 보았다.

한마디로 위대한 스승의 삶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