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13~14장
제 13장. '법답게 받아지니다[如法受持分]'
그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경(經)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길, 이 경(經)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설한 법이 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길,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하신 것이 없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가는 티끌[微塵]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길,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모든 미진(微塵)을 여래가 설하되, 미진이 아니라 그 이름이 미진이며, 여래가 설한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非世界], 그 이름이 세계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32상(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32상(相)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32상(相)은 곧 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32상(相)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목숨으로 보시했을지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서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받아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연설한다면 그 복이 저 복보다
매우 많으니라.
해석)
이 경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하였으니,
그뜻은 다이아몬드와 같이 아주 견고한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뜻합니다.
반야바라밀이란 앞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아래의 내용입니다.
1) 4상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를 하는 것.
2) 색성향미촉법(육근)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하는 것
3) 모습(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 하는 것.
4)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5) 무유정법을 “아뇩다라샴막삼보리”라고 한다. 무유정법 이기에 얻을 것이 없다.
6) 성인은 무위법, 무주(머무름이 없음), 무상(모양이 없고), 무기(일어남이 없고), 무멸(멸이 없음)을 바탕으로
조(비추고), 용(작용)을 갖춘 텅빈 지혜를 사용 함.
7) 연등불 회상에서 얻은 법이 없음을 아는 것.
8) 법상과 비법상을 버리는 것.
이러한 말씀을 이해한다면 일체의 모습과 논리와 정신적인 것들이 모두 무상에 바탕을 두므로 밖으로는 법공
이고 안으로는 아공임을 알게 됩니다.
법공이기에 이 우주의 본 모습이 텅 비었고, 아공 이기에 나의 본 모습이 텅 빈 것입니다.
일체가 텅 빈 것이기에 부처님의 깨달은 법은 무유정법이며 얻은 것이 없습니다.
제 14장. ‘모든 모습을 떠나서 적멸하다[離相寂滅分]’
이때에 수보리가 이 경(經)을 설하심을 듣고,
깊이 그 뜻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한 이렇게 뜻깊은 경전은, 제가 예로부터 얻은 혜안(慧眼)으로도
일찍이 이와 같은 경은 얻어듣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얻어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면 곧 참된 모습[實相]을 내리니,
마땅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임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참된 모습[實相]이란 곧 이 모습[相]이 아닌 것이니,
이 까닭에 여래께서 참된 모습[實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듣고, 믿어 알고 받아 지니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만약 오는 세상 후 오백세에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얻어듣고서 믿어 알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이 없으며, 인상이 없으며, 중생상이 없으며, 수자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아상은 곧 이 상(相)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이 상(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모습[相]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심히 희유함이 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제 1바라밀이 제 1바라밀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제 1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어찌된 까닭인가. 수보리야, 내가 옛적 가리왕에게 신체를 낱낱이 베일 때에 나는 그때에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으리라.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五百世)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이 없었으며,
인상도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으며,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모습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지니,
마땅히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生)지니라.
만약 마음이 머묾이 있으면 곧 머묾 아님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하길, 보살은 마땅히 마음을 색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느니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이 상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중생이라고 설함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사실과 같이 말하는 자며, 거짓이 아닌 말을 하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법인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서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쳐서 여러 가지의 사물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서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하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보아서 모두가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되리라.
해석)
실상이란 모든 상이 거짓임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법공과 아공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깨끗한 거울에는 고정된 형체가 없어서 인연 따라 모든 법을 비추어 줍니다.
밝고 어둠과 잘생기고 못생긴 것과 깨끗하고 더러운 것과 빨강과 파랑을 비추어 줍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공인 마음이 깨끗한 거울과 똑 같습니다.
거울은 거울이라는 형체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형체마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아공의 마음상태에서 일체의 모든 법을 본다면 가히 한 법이라도 머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이름은 그저 거울에 비친 형상처럼 환상임을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