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15~16장
제 15장. '경을 간직하는 공덕[持經功德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며, 다시 저녁에도 또한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여, 이와 같이 무량한 백천만억 겁 동안을 몸으로써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으면 그 복이 저 몸을 보시한 복보다 더 뛰어날 것이니,
어찌 하물며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연설해줌이겠는가?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 경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끝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여래는 대승(大乘)을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最上乘)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라. 이런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짐이 되느리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집착하게 되므로,
곧 이 경을 능히 받아듣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하여 해설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느 곳이든지 만약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 아수라 등이 응당 공양하게
되리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이 됨이라.
모두가 공경히 예배하고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그곳에 흩으리라.
해석)
대승(大乘)이란 지혜가 광대해서 능히 일체 법을 잘 건립하는 것이요, 최상승(最上乘)이란 가히 더러운 법을 싫어함을 보지 않으며, 깨끗한 법을 구함도 보지 않고, 제도할 중생도 보지 않으며, 증득할 만한 열반도 보지 않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도 짓지 않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는 마음도 짓지 않으니, 이것을 최상승이라 이름하며, 또한 일체지(一切智)라 이름하고, 무생인(無生忍)이며, 대반야(大般若)라 이름한다.
[출처] 육조 혜능조사 금강경 해석
일체중생이 본래부처인데
둘로 보는 견해로 귀신굴(윤회)에 떨어진다. -백봉 김기추-
신심명에서도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오직 밉다. 좋다 가리는 마음만 없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모습이 없어 천지에 가득한 이것(무유정법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은 같다고도 말 못하고 다르다고도 말 못하기에 일체중생이 똑 같이 공유하기도 하고 중생의 수만큼 존재하기도 합니다.
제 16장.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하다[能淨識心分]'
다시 수보리야,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經)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더라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의 사람들이 업신여김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수보리야, 내가 과거 무량 아승지겁을 생각하니, 연등불을 뵙기 전에도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다 공양하고 받들어 섬겼으며, 헛되이 지냄이 없었노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면 그 얻는 공덕은 내가 여러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과 내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을 내가 다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몹시 산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경은 뜻도 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과보도 또한 생각할 수 없느니라.
해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모양이 없고(무상),
모양이 없기에 생각할 대상이 없고(무념),
머무르는 바가 없습니다(무주).
이러한 법이기에 그 뜻을 가히 생각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눈 앞 허공과 같이 텅 비었으면서도 일체를 비추는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회광반조).
어떻게 아느냐? 오직 모를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