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

미라래빠 일대기

하나의 길 2016. 12. 14. 16:43



밀라레빠의_십만송.hwp



2010년경 미라래빠의 일대기를 접하고 환희에 젖었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인 미라래빠의 법통은 지금강불-틸로빠-나로빠-마르빠-미라래빠-감뽀빠로 이어집니다.

일대기를 읽는 순간은 저에게는 기도의 시간이며 수행의 시간과 같았습니다.

스스로 부처를 이루었음을 선포한 미라래빠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부단한 정진을 통하여 한 생애에 부처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라래빠는 궁극의 성취를 이룬 후에도 스승님, 수호불, 다끼니 여신의 조언과 예언을 받으며 악마들과의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미라래빠 자신이 관하여 본 천상세계, 지옥세계에 대한 언급도 있어 참고할 만 합니다.

일대기는 1100년 전후의 이야기로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대기에는 티베트 불교의 성자인 파드마 삼바바와 그의 가르침인 바르도의 이야기도 나오며 대승불교의 용수,

무착보살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미라래빠 법통의 수행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는 생기행수행으로서 공(空性)의 체득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명에너지활성화입니다. 오늘날 단전호흡에 해당 되겠습니다.

한국과 같은 대승불교는 대부분 생기행 수행에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에 대한 무상함을 근본으로 이루어진 가르침에 근거를 두겠다고 하겠습니다.

미라래빠 법통의 수행은 생기행과 더불어 생명에너지 활성화를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강한 힘을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하루에 조금씩 이라도 일대기를 읽어보면 경건해지고 불교의 참 가르침을 알 수 있고 미라래빠의 위대함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을 반조하는 수행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위대한 주() 미라래빠 스승에게 무한한 저의 존경심을 드립니다.

 

 

1. 진정으로 거룩한 진리를 수행하고 싶다면

    불교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정복케 만드는 것임을 기억하라.


2.나는 마르빠 스승의 은총으로 모든 존재들과 일체의 현상이 마음의 표현임을 이미 깨달았다.

  마음 그 자체(一心)는 투명한 깨달음의 공성(空性)이다. 그러니 이 모든 현상들이 어찌 나를 해치리오?

  악마를 물리치고 몰아내려 하다니, 나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3.일심(一心)은 바탕이 없고 텅 비어 있나니

    티끌보다 더 적어라.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따로 없을 때

   '바른 견해' 비로소 체득되도다.

 

4.삼라만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자는  그것이 다만 마음의 그림자임을 깨닫게 되네.

   하여 ()과 형상()의 평등성을 아네.

 

5.본질은 텅 비어 있으나, 만물은 현현되고 있지 않은가.

      

6.삼라만상 우주 자체는 마음속에 있고

   마음의 본질(一心)잡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투명한 깨달음의 세계이니 이것이 바로 정견의 요점.

 

7.태초에 어떤 것이 온 바도 없고(不來)

   중간에 어떤 것이 머문 바도 없으며(不住)

   마지막에 어떤 것도 간 바가 없나니(不去)

   참마음은 일어남도 사라짐도 없네.

   과거.현재. 미래에 한결같이 상주하네.


8.하늘나라도 없고 지옥도 없음은

   정견(正見)의 확신이요,

   명상도 없고 산란심(散亂心)도 없음은

   정행(正行)의 확신이요,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음은

   대성취의 확신이네.

 

9.쏘우 욘욘욘욘욘용고... ...

   태초의 현현(顯現)이 일어났네.

   그때 모든 것이 시작되었나니

   현상계의 속성을 지니고 나타났네.

   사대(四大)가 한데 모여

   윤회계 삼계(三界)의 대도시 형성되었네.

   분별하는 내적 마음은 본질과 하나이니,

   빛나는 공()의 각성 속에서

   한없는 상념과 인식이 솟아났네.

  이는 온갖 업과 번뇌의 원천이네.

 

10.마음의 본성은 모든 극단적인 언어의 유희를 초월한 투명한 공성(空性)이다.

 

11.자애로운 신들과 사악한 악마들을 실재하는 존재들로 여겼네.

     하지만 지존자의 은총과 축복으로 윤회계와 열반계가 존재함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음도 아님을 깨달았네.

     삼라만상은 마하무드라일 뿐.

 

12.붓다는 말씀하셨네."세속 진리[俗諦]에는 윤회계와 열반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고한 진리 세계[眞諦]에는 나타난 세계와 공(), 존재[]와 비존재[非有]

    한결같은 '일미(一味)'이네.

    이것이니 저것이니 차별이 없어 만법(萬法)은 위대함 속에서 '하나 속 둘[不二]'이라네.

 

13.사신불(四身佛)을 초월적인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성취하고자 노력하지만, 실은 자신의 마음을 떠나서는

     어떤 붓다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는 순간에 나타나는 대광명[淨光明]은 법신이요, 바르도[死後中有界]의 순수한

     현현은 보신이요, 각자의 업()에 따라 태어나는 것은 화신이다. 그리고 삼신(三身)의 분리될 수 없는 통일체는

     자성신(自性身)이다.

 

14.바르도의 방랑자는 아뢰야식이네. 욕정과 증오에 휘말려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네.

 

15.구도 수행은 셋으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는 수호불 생기행(生起行)이요,

     둘째는 나디와 쁘라나와 빈두행이요,

    셋째는 마하무드라이네.


   띠레는 거북이가 움츠리듯 천천히 아래로 향하여[下降]

   중앙 에너지 통로에 잡았다가[保存또는 保持]

   추적하는 짐승처럼 머리로 되돌려야 하네[逆轉].

   이어 전신에 펼 때는[] 해탈케 하는 무드라를 행해야 하네.


   빈두와 나디의 생명열 수행에는 형상의 집착을 떠남이 필요하네.

   에너지 중앙 통로 두띠는 일체의 노력과 행위를 초월하나니

   무위(無爲). 자재(自在). 지순(至純)이네.

   하여 이원(二元)의 집착끈이 절로 풀리네.

   

 생명열이 각성될 때 기쁨이 솟아나며

 2대 통로로 흐르는 에너지의 바람이 중앙으로 흐를 때 기쁨이 솟고

 각성의 마음이 위에서 흘러내릴 때 기쁨이 용솟음치며

 아래까지 정화시킬 때 기쁨은 끝없나니

 ()과 적()이 가운데서 만나 지복이 생기네.

 하여 지극한 복락이 전신에 퍼지나니 이는 수행자의 여섯 가지 지복 체험이네.


16.모든 중생들의 마음은 비어 있으며 투명하오. 그 마음은 열반의 영화(榮華)에도, 윤회의 오욕(汚辱)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오. 바로 그 마음이 붓다의 씨앗이 감추어진 여래장(如來藏)이오.

 

17.내가 아는 진리는,

    삼라만상은 일심(一心)이며 그 마음은 어떤 그림자의 흔적도 없는 투명한 공성(空性)이라는 것이오.

 

18.부처님은 또 말씀하셨소.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사람은 마음 자체가 대지혜(大智慧)임을 알게 되리라.

     때문에 다른데서 부처를 구하지 않나니, 이는 최상의 가르침이니라.

    지고한 광경은 볼 게 없나니 깨달은 마음의 본질이 바로 그러하기에.

    지고한 얻음은 얻을 게 없나니 마음의 본질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배이기에.

    대지혜는 진아의 각성이나니 일체의 언어와 설명을 초월하네.

 

19.().(). () 삼학(三學)을 더욱 깊고 넓게 하라.

     아들아, 제 마음이 곧 붓다임을 깨달을지라도 스승을 버리지 말아라.

    모든 행위가 본질적으로 지순한 자체임을 알았다 할지라도 사소한 덕행이라도 저버리지 말아라.

    모든 인과와 업이 공함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사소한 죄악이라도 범하지 말아라.

    자기와 타인이 평등성에서 '하나'임을 증득하였다 할지라도 진리를 비방하거나 중생을 저버리지 말아라.

 

20."존승이여, 어떤 경지에도 마음을 묶지 말고, 어떤 부딪힘[]에도 마음을 닫지 말지며, 어떤 편견이나 극단에도

      떨어지지 마라. 마음은 설명할 수도, 표현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이 진리를 완전히 깨달았을 때는

      마음을 어떻게 불러도 무방하다.“

 

21.위대한 공덕과 정행과 정토는 지순한 지혜의 자연스런 현현이니

     외부 세계 속에서 실재하는 것이라 여기지 마라.

 


22.내 제자 가운데 스물다섯 명은 지고한 성취를 이룬 자들이요,

     백 명은 체험을 얻은 자들이요,

     백팔 명은 무위(無爲)의 체험을 증득하였고

    일천 명은 법(진리)과 합일되었으며

    십만명은 진리와 인연을 맺었다네.

 

23.나는 나 자신의 진아심을 관하는 명상자이기 때문에 외부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형태로나 모양으로 바꿀 수 있다.

     또한 나는 진아심으로부터 삼라만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거두어들일 수도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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