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 잡아함경 17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중생은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면
괴롭다는 느낌 , 즐겁다는 느낌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
성자도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면 그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렇다면 중생과 지혜로운 성자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 "
제자들은 대답대신 사뢰었다 "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
"어리석은 중생은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을 접촉하면,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 뒤 이들은 곧 근심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원망한다
이는 느낌에 집착하고 얽매이기 때문이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첫번째 화살을 맞은 뒤, 다시 두번째 화살을
맞는 것과 같으니라 " "그러나 지혜로운 성자는 대상을 접촉하더라도, 몸의 느낌만 생길 뿐, 생각의 느낌은
생기지 않는다. 이는 즐겁거나 , 괴롭거나 ,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거나 하는 느낌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첫 번째 화살을 맞았으나 , 두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 17권 470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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頌 / 법상스님
어리석은 범부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경계를 대하면 좋고 나쁜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 감정에 포로가 되어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을 갖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말 라.' 아함경의 아주 중요한 경구입니다.
금강경에서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요.
육근과 육경이 있는 이상 경계를 만나 면 당연히 감정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감정에 집착하기 때문에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고 분별하고,
그 분별로 인해 행복과 불행을 수 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경계를 만나더라도 잘 관찰함으로써 그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좋고 싫은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아가 행복이니 불행이니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
경계를 만나 감정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가 벌써 첫 번째 화살을 맞은 것입니다.
그렇듯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이야 육근 육경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감정에 또 다른 분별과 집착을 덮씌워 제2, 제3의 분별 로 몰아감으로써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을 연신 맞게 된다는 말입니 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
경계 따라 응당히 마음을 내되 거기에 머무르지 말라는 말은 집착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 지요.
무심(無心)이 되라 하고, 분별 집착하지 말라고 하니 그저 돌처럼, 산천초목처럼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돌장승이 되라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입과 몸과 뜻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 하면서 한없이 마음을 내더라도 거기에 한 치도 머무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나 온 자취를, 발자국을 짊어지고 가 지 말고 자유롭게 놓고 걸림없는 시원한 걸음을 걸으라는 말입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업식이 남아있는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업식이 남아 있으니 이렇게 육근을 가진 사람으로 윤회를 하였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육근과 육경이 만나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화살은 우리의 지난 업식이 인연을 만나고 경계를 만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일 뿐입니다.
.....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악업의 업장이 현 실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내 안의 악업을 소멸할 수 있는 좋은 계기 가 된다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우리들은 괴로운 경계는 만나기 싫어하고, 즐거운 경계만 만나고 싶어하면서 살았지만
사실은 수행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괴로운 경계를 만난다는 것은 내 안의 악업의 업식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니
그만큼 내 안의 악업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중요한 순간이겠습니까.
그러니 괴로운 경계를 만나더라도 거부 하려 하지 말고 크게 긍정하면서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냥 큰 방하 착의 마음으로 꿀꺽 삼켜 버려야지 자꾸 버리려고 하고, 괴로운 감정에 휘 둘려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는 말은 모처럼 업식을 닦을 중요한 기회를 만나고도(첫 번째 화살)
그것을 닦아내 어 뿌리 뽑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그 감정에 휘둘려 감정적인 말과 행동 생각(삼업)을 일으킴으로써
그로인해 또 다른 업식만 늘려나가는 꼴이 되 고 맙니다.
......
괴로운 것을 보면 없애 버리려고 애쓰고, 즐거운 것을 보면 더 끌어안으려고 애쓰는,
이 양 극단의 마음을 다 놓아버려 텅 빈 마음이 되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길입니 다.
내 앞에 펼쳐지는 좋고 나쁜 그 어떤 경계라도 다 내 마음 공부를 위해 나타나는 법계의 배려인 것입니 다.
내 안의 업장을 녹이라고 나오는 경계란 말이지요. 그러니 크 게 보았을 때 긍정 아닌 것이 없어요.
긍정 부정 나누어 긍정이라는 것이 아니라 양 극단을 뛰어넘는 대 긍정, 절대 긍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되 잡지 말고(무집착) 분별없이 잘 관찰함으로써(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 길이 수행자의 함이 없는 행이며, 무 심(無心)의 실천이고, 공(空)의 실천, 무집착의 실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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