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중심으로

모든 번뇌의 경

하나의 길 2015. 9. 8. 07:5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시왓티 자따숲의 이니타삔티까 승원에 머무셨다.

어느날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은 "세존이시여" 라고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금부터 모든 번뇌에서 자신을 지키고 번뇌를 단속하는 법을 설하려니

그대들은 잘 듣고 새기도록 하라.

제자들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나는 번뇌의 소멸에 대해 잘 알고 잘 보는 자이기에 그대들에게 말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번뇌의 소멸에 대해 잘 알고 잘 보는 것인가?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과, 이치에 맞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

이 두 가지 가운데 이치에 맞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게 마음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새롭게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더욱 증가하느니라.

반대로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사라지고 끊어지느니라.

 

비구들이여 관찰을 통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지키고 단속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수용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인내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으며 피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는가 하면 제거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행으로써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관찰을 통해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바른 법을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스러운 이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이들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성스러운 이들의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고 참된 이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이들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된 이들의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을 잘 기울여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느니라.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범부가 이미 마음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상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나 있던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증가하고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있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증가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 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범부가 아직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사실은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상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나 있던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끊어지고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나 있던무명에 의한 번뇌가 사라진다면 그것들은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들 이니라.

비구들이여 이처럼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번뇌가 성장하는 것이다.

범부는 그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게 다음과 같은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나는 과거세에 존재했을까? 과거세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과거세에 무엇이었을까?

과거세에 어떻게 지냈을까? 과거세에 무엇이었다가 다시 무엇으로 변한 것 일까?

나는 미래세에 존재할까? 미래세에 존재하지 않을까? 미래세에 무엇이 될까?

미래세에 어떻게 지낼까? 미래세에 무엇이 되었다가 다시 무엇으로 변하게 될까?

현세의 내가 지금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혹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현세의 나는 무엇인가?

어떻게 있는가? 이 존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고.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게 마음을 기울이면 다음의 여섯 가지 견해가 생겨난다.

첫째, 나에게 자아가 있다.

둘째, 나에게 자아가 없다.

셋째, 자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

넷째, 자아로써 무아를 인식한다.

다섯째, 무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

여섯째, 나의 이 자아는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경험하는데

그러한 나의 자아는 항상 하는 것으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확고하게 생겨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견해에 빠짐, 견해의 밀림, 견해의 황무지, 견해의 왜곡, 견해의 몸부림, 견해의 족쇄라

하며 이같은 견해의 족쇄에 묵힌 채 바른 법을 배우지 못한 범부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 탄식과

고통 근심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궁극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설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반대로 바른 법을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성스러운 이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이들의 가르침을 바로알고 성스러운 이들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된 이들을 친견하고 참된 이들의 가르침을 바로알고 참된

이들의 가르침에 이끌린다.

그들은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도 바로

알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고귀한 제자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앞으로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상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나 있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증가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고귀한 제자가 이미 마음을 기울이고 있고 앞으로도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상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나 있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없어진다면

그것들은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들이니라.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 대상에

마음을 기울임으로써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가 없어진다면 고귀한

제자는 그와 같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다음과 같은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라고.

그는 이처럼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임으로써 개체가 있다는 견해와 의심과 계행과 의례에

대한 집착의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관찰을 통해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지키고 단속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여기 한수행자는 첫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

둘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귀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

셋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코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

넷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혀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

다섯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몸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

여섯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정신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

만약 그가 눈과 귀와 코와 혀 몸과 정신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키지 않으면 그에게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육근의 감각기능을 잘 다스려 지킨다면 그에게 곤혹과 고뇌에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리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지키고 단속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수용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여기 한 수행자는 첫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의복을 수용한다.

이는 추위와 더위를 물리치고 등에, 모기, 바람, 뙤약볕 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몸이 일부를 가리기

위함이니라.

둘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음식을 수용한다.

이는 즐기거나 취하거나 아름다움이나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지탱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한 범행을 지켜가기 위함이니 그는 음식을 받을 때 마다 "예전의 고통을 끊고 새로운 고통을 일으키지 않고 건강하고 허물없이 편안하게 머물리라"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셋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처소를 수용한다.

이는 추위와 더위를 물리치고 등에, 모기, 바람, 뙤약볕 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계절의 변화에서 오는 위험을 없애고 홀로 안전하게 명상하기 위함이니라.

넷째,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필수약품을 수용한다.

이는 질병의 고통을 막고 병이 없는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니라.

이러한 것들을 잘 수용한다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리니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수용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인내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여기 한 수행자는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등에, 모기, 바람,

뙤약볕 뱀과의 접촉을 견디어 낸다. 또한 그는 고약하고 악의적인 언짢은 말들과 몸에 생겨난 괴롭고

아프고 저리고 찌르고 불쾌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참아낸다.

이러한 것들을 잘 인내한다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리니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인내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피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여기 한 수행자는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사나운 코끼리와 사나운 말을 피하고 소와 개를 피하고 뱀 말뚝 가시덤불 협곡 낭떠러지 늪지를 피한다. 앉기에 적당하지 않은 자리와 가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소

사귀기에 적당하지 않은 악한 친구를 피한다.

이러한 것들을 잘 피한다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리니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피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제거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여기 한 수행자는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과 악의에 찬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이러한 것들을 잘 제거한다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리니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제거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수행으로써 끊어지는 번뇌란 무엇인가?

여기 한 수행자는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수행에 전념한다.

그는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면서 열반으로 향하는 알아차림을 얻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법과 정진과 희열과 편안함과 삼매를 얻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이러한 것들을 잘 수행한다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리니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수행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니라.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관찰을 통해 끊어지는 번뇌를 관찰을 통해 끊고 지키고 단속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를 지키고 단속함으로써 끊고 이렇게 각자의 방법에 맞게 모든 번뇌를 끊는다면 그를 일러 모든

번뇌를 잘 단속하여 머무는 자 갈애를 끊고 족쇄를 풀어 버린자 자만을 꿰뚫어보고 괴로움을 끝내 버린자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