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

혜국스님의 허공성

하나의 길 2015. 11. 28. 10:57

근래에 선지식으로 존경받는 충주 석종사 혜국스님의 법문을 불교TV를 통하여 접하면서

그분이 허공성을 강조하시고 설법하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백봉 김기추 선생님의 허공성이 불법에 모순되지 않음을 제 나름대로 철저히 검증한 후에 이블로그를 운영

하였지만 검증 당시에는 혜국스님의 글들은 접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기 허공성관련 부분 발췌한 법문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발췌 1.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번뇌 망상을 싫어하지 말고, 화내는 마음, 우울한 마음, 성내는 마음, 그것자체를 불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떠나지 말아야 합 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서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한평생 가장 소중한 일은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번뇌

망상을 텅 빈 허공이 되도록 의식 전환이 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행복을 성취하는 자리입니다.

"대나무 그림자가 댓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저 밝은 보름달 천만 곳에 뚫고 들어가도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는구나"라는 야부 스님의 게송과 같이 나도 없고 남도 없는 상태입니다.

발심출가해서 어디에 가 수행하든 내 안에 번뇌 망상이 전환된 만큼 공부가 되지 바깥 조건에 따라 공부가

되 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발심이 됐는가 뒤돌아보는 마음으로 이번 결제에 들어가 보길 바랍니다.

번뇌 망상은 내 탓이지 누구 탓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주인 삼으십시오.

오직 주인이 될 때에만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텅 빈 허공성'이라고 하는 조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발심을 가 지고, 그런 마음 다지는 것을 '결제'라 생각하십시오.

날마다 날마다 깨어 있는 수행자 되어 스님들 어깨에서 부처님 광명이 빛나길 바랍니다.

 -운문사 동안거 결제법문- 계간[운문]겨울호에서 옮김


발췌 2.


간화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비유를 빗대 설명했다. “간화선은 본질을 보는 공부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터득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생각은 전부 남의 지식을 빌려온 것일 뿐입니다. 남의 지식을 전부 비워내는 것이 바로 간화선입니다. 여러분은 본래 빈 그릇임을, 허공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허공을 한 번 보자. 허공은 천 년 전 허공이나 지금 허공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조금도 다르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허공은 그저 원융한 상태이지 이 허공, 저 허공이 없기 때문에 이 쪽이니 저 쪽이니 하는 공간이 없다.

즉 시간과 공간이 없는 자리를 죽음이 없는 자리라고 한다.


발췌 3.


그런데 지금 허공성을 체득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 마음이 마음에 대한 집착을 놓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이고 집착하는 것은 무엇이며 육신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우리 몸뚱이를 한 번 보자. 몸뚱이는 종교적이든 과학적이든 흙 기운, 물 기운, 열 기운, 바람 기운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우주 자원에 있는 원소를 빌려다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몸뚱이는 빌려온 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이 끝나면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죽었다는 말을 쓰지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지수화풍이라는 재료로 몸뚱이라는 그릇을

만들 때 그 속에는 무엇이 차 있는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우리 몸통이라는 그릇 속에 번뇌 망상이 꽉 차

있기 때문에 그 번뇌 망상의 기운이 보일뿐 무심(無心)의 세계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원오선사는 만약에 몰록 벗어나서 무심경지에 오르기만 한다면 모든 망념과 더럽혀진 습기가 다 없어져

버린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무심경지란 무엇인가. 찻잔에 차가 가득 차 있다고 하자.

이 차를 몇 번 마시면 그릇은 빈다. 빈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허공성이라고 한다.

우리 몸뚱이의 번뇌 망상을 찻잔을 비우듯이 비워버려 텅 빈 그릇을 무심경지라고 한다.


발췌 4.


요즘 사람들은 수미산이 좁쌀 속에 들어가는 도리를 말하면 이해가 안 간다며, 구름 잡는 소리라고만 한다. 그러나 조사스님들이 말과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밝혀 온 것은 크나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바로 허공성을 체득하지 못하는 건 마음과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참선에서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허공성을 제대로 못 보면 시공간이 끊어진 자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세상 만물을 먹여 살리는

이치를 보지 못한다.

 마음이라는 것을 놓고 볼 때 어떤 사람은 좋은 마음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시원찮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들에게 희망이란 없을 것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빨리 깨달을 것이고, 못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늦게 깨달을 것인데 황벽 스님은 우리 마음은 똑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황벽 스님은 이 마음이란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넘어 그 몸 그대로 일뿐이다. 그러므로 한 생각을 움직였다면 곧 어긋나 버린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으며 재볼 수도 없습니다. 이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뚱이는 모양이 있지만 몸뚱이를 이끌고 다니는 마음은 모양이 없어 허공성이라고 합니다.

황벽 스님은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으로 다름 없음이 허공과 같아서 그것에는 잡됨과 무너짐도 없고 온누리를 비추는 햇살과도 같다. 해가 떠올라 온 천하가 두루 밝아질 때라도 허공은 한번도 밝은 적이 없으며 해가 져서 어둠이 온 천하를 덮을지라도 허공은 어두웠던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허공 자체는 거울처럼 밝음과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입니다. 허공의 성품은 그대로일 뿐입니다.

한 생각 돌려 오늘 이후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 같은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남이 어떤 모함을 하더라도 내 귀로 내 소중한 그릇에 남의 억울함을 담아두지 않고, 내 옥 같은 눈으로 남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입으로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하십시오.

억울함 등을 담아두는 것은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의 말씀처럼 내 소중한 몸뚱이라는 그릇에 남을 원망하고, 남을 미워하고,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등 불순물을 담아 두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불자가 돼서 자기 마음을 한 번 닦아보지 못한다면 이 또한 너무나 억울한 일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 나’, 자기를 돌아보는 자신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이같은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신 여러분들처럼 불제자가 된 것은 크나 큰 복입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마음 부처를 믿는 것이고, 내 이성, 순수이성이 끊어진 허공을 믿는 것입니다. 허공은 가고 옴이 없고 그대로의 존재일 뿐입니다.


발췌 5.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