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5명이 참가한 6박 7일 용맹정진은 처음 해 보았는데 덥고 다리가 아픈거 빼고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잠은 백봉선생님 설법시간이나 좌선시간에 잠시 조는 걸로 충분했고
6일동안 허리를 바닥에 대지 않았는데 불편함이 없어 장좌불와를 10년은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진정한 수행은 중간에 병이라는 마구니가 왔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문제이겠습니다.
7일 동안 지내면서 스스로 명확히 정립된 개념이 있습니다.
이 세상(상대성)은 환상이요 꿈이다.
그 환상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성은 거짓으로서 참이다.
그 환상에 집착을 한다면 환상은 거짓으로서 끝난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니 생각하는 허공이 참된 법신(절대성)이다.
허공은 한 물건도 없어서 본래무일물이다,.
허공은 모습을 떠난 것이라 알래야 알 수 없어서 모를뿐 이다.
금번 용맹정진에 참석하면서 일관되게 노력한 수련은 백봉 선생님의 새말귀 설법중
비명비암인 법신을 한번 친견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법신은 모습을 떠난 것이라 친견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비명비암인 법신을 한번 친견해 보고자 하면
온갖 색깔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환하고 밝은 법신자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모순적인 이야기라고 백봉 선생님도 말씀하면서 권유한 내용입니다.
저는 6일 내내 오로지 이 한 가지를 명상하였으나 진척이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명상 자체를 어떻게 시작할지도 몰랐으나 겨우 이렇게 가면 되겠다는 방법만 정립한 수준 입니다.
그러면서 이 명상은 결국 깊은 삼매 체험과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깊은 삼매 체험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백봉 선생님의 설법이 시절인연을 만난 것입니다.
산청 보림선원.
보시금이 적어서 겨우 한 달, 한 달을 버티며 운영을 합니다.
묵산 노스님이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사색을 하는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나도 노년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비록 스님으로서 명예와 부가 없지만 그래도 올곧게 살아오신 수행자의
위의를 갖추었으니 부럽습니다.
묵산 스님이 소개하신 백운대사(白雲大師)의 법문
學人無也術(학인무야술) 배우는 사람에게는 다른 길이 없으니
卽似大死人(즉사대사인) 크게 죽은 사람과 같아서
一點氣無也(일점기무야) 한점의 기운마저도 없어야
方與那人合(방여나인합) 원하는 사람과 하나가 된다.
큰 보시자를 만나 산청 보림선원이 발전할 수 있기를!
어려움 속에서도 오로지 백봉 선생님의 불법이 널리 펴지는
시절인연을 기다리며 묵묵히 정진하시는 청봉거사님에게 불보살님의 가피가 계시기를!
모든 대중이 발전하기를!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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