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3

사성제로 풀어쓴 금강경 요약 해설

하나의 길 2025. 11. 21. 19:27

[금강경 해설을 시작하면서]

선남자 선여인이 부처님이 깨달으신 최고의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장로 수보리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하신 것이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아상(無我相) 즉 나라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나를 구성하는 오온은 무상한 것 이기에 괴로움의 원인이고 무아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적, 물질적 무아임을 철저하게 자각하면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한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을수 있다고 합니다. 일체의 중생 또한 무아상 이므로 구제한 중생이 한명도 없는 것입니다. 
조건으로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하고-괴로움이며-무아임을 자각하여 일체의 갈애를 버리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습니다, 부처님의 정각은 버림으로서 얻는 것이기에 그 깨달음에는 어떤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증득한 무엇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눈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인연따라 생겨난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철저하게 자각하신 상태에서 이 괴로운 윤회계를 돌고도는 중생들을 위하여 갈애를 끊게 하고자 법 아닌 법을 펴신 것 입니다.무상-고-무아를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신다면 바로 보살님이시고 부처님 이십니다.

*금강경은 반야심경과 동일한 내용 입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가르침이 경(經)을 통하여 후대에 전달됨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제 1장. 법회를 이룬 연유[法會因由分]

온 우주에서 제일 귀하신 세존이시지만 조건으로 이루어진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인 이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곱 집을 차례로 돌며 탁발을 하셔서 공양을 마치었습니다.

제 2장. 수보리가 법을 청하다[善現起請分]

부처님이 깨달아 얻으신 제일 높은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무상정등정각)를 얻고자 한다면 선남자 선여인은 응당히 사상이 없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제 3장. 대승의 바른 종지[大乘正宗分]

부처님이 깨달아서 증득한 최고의 법,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고자 한다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어야 합니다.
조건으로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하고, 무상하기에 괴로움이고, 참된 내가 아니라서 무아 입니다. 무상, 고, 무아를 완전하게 깨달으신 분에게는 일체의 법에 대한 집착이 없습니다. 그런 분에게는 나라는 생각, 너라는 생각, 나는 깨달은 사람이고 너는 중생이라는 생각, 허망한 이 몸의 수명에 대한 집착이 없습니다. 저는 무아상 이 세 글자가 금강경을 대표하는 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나라는 생각이 없으려면 이 세상의 생겨난 모든 법(정신적, 물질적)이 무상, 고, 무아임을 여실하게 증득해야 만이 가능합니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여실히 아시는 분이 보살이고 부처님인 것입니다.

제 4장. 묘한 수행은 머무름이 없음 (妙行無住分)

모습을 보면서 모습에서 벗어나고(無相), 생각을 하면서 생각에서 벗어나면(無念) 모든 행동이 무주(無住)가 됩니다(육조 혜능대사). 
눈만 뜨면 마주보는 모든 모습(色)이 허망함을 관찰하고 소리, 향기, 맛, 촉감, 정신적 작용(法) 이 모두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집착 없는 보시 즉, 내가 한다는 상이 없는 보시를 하면 이 사람의 공덕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하기에 무상(無相),무념,무주입니다.

▶육조 혜능대사 :  당나라 638~713

제 5장. 바른 도리를 진실되게 보다(如理實見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법구경에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무상하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이 무상함을 지혜로써 깨달아 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눈으로 일체의 대상을 보면서 그 모든 것들이 무상함을 관한다면 바로 부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그렇게 세상을 관하기 때문입니다.

제 6장. 바른 믿음은 흔하지 않다(正信希有分)

여기 죽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 죽비는 무상한 대나무를 가공하여 만든 것이고 역시 무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비를 보되 영원한 죽비가 아님을 압니다. 이것이 법을 취하지 않음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비를 이용하여 참선을 시작하거나 마치거나 다른 예식을 봅니다.
무상한 죽비임을 인지하면서 죽비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을 법 아님도 취하지 않는 것 입니다. 상을 보면서 상에 머물지 않음입니다(無相).

제 7장. '얻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無得無說分)’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무아인 것을 여실히 체득하여 일체의 갈애(욕망)가 끊어지신 분. 나라는 아상이 완전히 사라지신 분. 
갈애(정신적 대상인 다섯가지 포함_즐거움,분노, 나태와 게으름, 근심과 걱정, 의심)를 멀리 여읨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이 가득한 초선과, 더욱 더 수행하여 내적 평온과 마음이 하나 됨을 이루고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이선정과,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평온하게 머물면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통하여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는 삼선정을 이루고 다시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만족과 불만이 모두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온하고 마음챙김이 청정한 사선정을 이룹니다.
이렇게 얻은 최상의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결국 무상-고-무아의 
통찰과 갈애의 여윔을 통하여 얻은 법이므로, 즉 모든 것을 여윔으로 얻은 법이므로 하나라도 얻은 법이 없는 것입니다.  탐진치를 완전히 여윈 무상정등정각,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제 8장. '불법에 의지하여 세상에 나다(依法出生分)’

물질적, 정신적(부여한 이름) 모든 것이 무아이므로 불법도 이름이 불법일 뿐입니다.

제 9장. '하나의 모습도 모습이 아니다(一相無相分)'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의구심 없이 확실하게 믿으며 수행하여 탐진치가 옅어지면 성인의 흐름에 드는 수다원과를 얻습니다. 이 후 여실한 수행을 통하여 무상한 이 몸을 한번 더 받아야 하는 사다함과를 얻습니다. 이 후 더욱 여실한 수행을 통하여 무상한 이 몸을 받지 않는(욕계, 색계를 떠남) 아나함과를 얻습니다. 이 후 더욱 여실한 수행을 통하여 욕계 색계 무색계를 완전히 떠나서 더 이상 존재의 형성을 하지 않는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도 부득이 이름을 붙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 10장. '깨끗한 마음 자리를 장엄하다(莊嚴淨土分)’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내 몸의 육근이 무상하니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착을 하지 않으면 마음의 머무름도 없습니다(無住).
무상-고-무아인 이 삼계에서는 얻을 법도 장엄할 것도 없습니다.
얻었다는 마음도 장엄한다는 마음도 무상한 오온을 바탕으로 생겨난 무상한 마음입니다.

제 11장. '하는 것이 없는 복은 아주 뛰어나다(無爲福勝分)’

제 12장. '바른 가르침을 존중하다(尊重正敎分)’

제 13장. '법답게 받아지니다[如法受持分]' 

존재로서의 부처님, 무상한 모습으로서의 부처님은 참된 것이 아니고 무상-고-무아를 알아서 일체의 갈애를 떠나신 그 마음이 참된 부처님입니다.
무상한 것에 붙여진 일체의 것은 단지 이름일 뿐입니다.

제 14장. ‘모든 모습을 떠나서 적멸하다[離相寂滅分]’

여기 빨간 사과를 보면서 무상한 사과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사과의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무상한 가운데 색깔은 빨갛고 모양은 둥글고...

제 15장. '경을 간직하는 공덕[持經功德分]’

범부는 모든 상에 집착하지만, 무상-고-무아를 지혜로써 깨달아 아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공덕과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습니다.

제 16장.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하다[能淨識心分]’

제 17장. '지극한 깨달음에는 내가 없다[究竟無我分]'     

최상의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결국 무상-고-무아의 통찰과 갈애의 여윔을 통하여 얻은 법이므로, 즉 모든 것을 여윔으로 얻은 법이므로 하나라도 얻은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완전히 놓아 버려서 모습에서 모습을 떠나고(무상) 생각에서 생각을 떠나서(무념) 일체법에 머무름이 없는 마음(무주)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입니다. 무상정등정각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제 18장. '한 몸으로 동일하게 보다[一體同觀分]’

중생들이 각자 지은 업에 의하여 윤회하는 것을 환하게 아시는 천안,
조건으로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고-무아임을 환하게 아시는 혜안,
무상한 법을 굴려서 무상함을 벗어나게 하시는 법안,
윤회계를 벗어나 열반을 성취하신 불안, 무상한 오온을 바탕으로 바깥 경계를 만나 일으키는 모든 중생의 마음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항상 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하기에 허망한 중생의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진실하지 않아서 얻을 것이 없습니다.

제 19장. '법계를 다 교화하다[法界通化分]’

실제로 복덕이 있다면 그 크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덕이라는 것도 무상한 것이므로,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여래께서는 무상한 것임을 알면서 많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제 20장. '몸과 모양을 떠나다[離色離相分]’

제 21장. '설할 법도, 설하여 질 법도 아니다[非說所說分]'    

부처님의 가장 높은 법은 모든 것을 버림으로서 성취하신 법이기에 얻은바가 없습니다.

제 22장. '법은 가히 얻을 것이 없다[無法可得分]’

제 23장. '깨끗한 마음으로 선법을 닦다[淨心行善分]’

사상을 떠나서 선법(善法)을 닦으면, 즉 일체가 무상하여 단지 이름 뿐임을 알면서 법을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부처님의 정각을 얻으실수 있다고 하십니다.

제 24장. '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가 없다[福智無比分]’

무상한 칠보로 보시한 공덕도 크지만, 모든 것이 무상함을 설하는 진리의 복덕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제 25장. '가르치되 가르치는 것은 없다[化無所化分]' 

부처님께서 중생교화를 위하여 온갖 법을 펼치시지만, 사상을 떠나신 마음으로 하시기에 부처님 여래도 중생도 없는 것입니다.

제 26장. '법신은 모습이 아니다[法身非相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생겨난 모든 것은(유위법)은 무상하므로 비록 부처님 모습일지라도 무상한 것입니다.

제 27장. '끊어져 없어지는 것은 없다[無斷無滅分]’

부처님은 혜안(무상-고-무아)과 법안(무상함을 인정하면서 세간법을 굴리심) 동시에 사용하십니다.

제 28장. '받지도 않고, 욕심 내지도 않는다[不受不貪分]’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하기에 괴로움이고 무아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기에, 무상함을 바탕으로 참을 인을 수행해야 합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노력과 근면과 수행과 자제로써 자기자신을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피난처로 삼습니다.

제 29장. '몸가짐이 항상 고요하다[威儀寂靜分]'  

무상함을 철저하게 깨달으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무상함의 생멸은 허상입니다. 반야심경에 불생불멸이라 함은
무상한 것의 본성을 알기에 생멸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오고감이 없음을 아시는 분입니다.

제 30장. '한 덩어리의 이치[一合理相分]’

삼천대천세계도 그저 무상한, 이름뿐인 허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31장. '견해를 내지 않는다[知見不生分]’

부처님의 얻은 법은 모든 것을 여윔으로 얻은 것이니, 얻은 바가 없음입니다. 다만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지만 그 모든 바탕은 무상(無常, 無相)입니다.

제 32장. '응신, 화신은 참된 몸이 아니다[應化非眞分]’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부처님은 마지막까지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고-무아임을 말씀하십니다.
중생을 마지막까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애쓰시는 위대하신 스승님 이십니다.

[금강경 해설을 마무리하면서]

금강경은 수보리의 질문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님이 얻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수 있습니까?
일체 중생을 구하되 한 중생도 구한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색(몸) 과 수상행식(마음)이 무상합니다.
내 몸의 여섯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가 무상합니다.
여섯 감각기관의 바깥 경계인 색성향미촉법이 무상합니다.
몸과 경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여섯 마음(안식~의식)이 무상합니다.
무상한 나의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이 세상을 모든 것이 무상합니다. 
무상한 것에는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기에 무주상보시를 합니다.
모든 것이 무상함을 알기에 중생교화를 위하여 법상과 비법상을 함께 굴립니다. 무상-고-무아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버림으로서 얻은 정각이므로,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바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32상도 이름이 32상입니다.
일체가 이름일뿐 실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상하여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래도 이름일뿐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오고감이 없습니다.
무아상과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이 금강경의 핵심입니다.
무상-고-무아를 바탕으로 아상이 없어져서 마음속 탐진치가 없어지면 열반을 실현합니다. 

2025년 11월 21일
낙가산 아래에서 허공인 일도 요약 함.